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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고 없이 누구에게나 찾아올 수 있는 ‘공황장애’

18-05-30 12:12

본문

“호랑이에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산다”는 표현이 있지만, 호랑이한테 물려가서 정신이 멀쩡하다면 무척 아플 것이다. 지속적인 공포 상태와 지속적 통증 상태 중 어느 쪽이 견디기 더 힘들까? 우리의 보편적 상식으로 추정해 볼 때, 심하게 놀라면 아픈 것 따위는 잊어버리게 마련이다. 그래야만 아픈 것도 잊은 채, 심지어는 팔다리가 부러진 것도 인식하지 못한 채 먼저 위험한 상황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심한 공포가 통증으로 가는 신경을 잠시 다른 곳으로 분산 혹은 차단하는 작용을 일으킬 것으로 추정된다.


공황장애로 상담받고 있는 남성.

그러나 피할 수 없는 곧 죽을 것 같은 공포나 극심한 통증을 우리 몸은 어떤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을까? 공황장애(恐慌障?) 발작은 대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느낌으로 표현할 수 있다.


- 꽉 막혀 몸을 조금도 움직일 곳이 없는 것 같은 갑갑한 느낌의 폐소공포(閉所恐怖).

- 호흡이 곧 차단되고 중단되어 숨을 쉴 수 없는 느낌.

- 높은 곳에서 급격히 추락하는 것과 같이 도저히 생존할 가능성이 없는 느낌.


마치 그 자리에서 심장이 멈추어 바로 죽을 것 같기도 하고 대소변을 지리는 사람도 있으며, 콧물, 눈물 범벅이 되기도 한다. 구토도 흔한 증상이다. 의식적으로 발생하는 것이 아니며, 예기불안(豫期不安)과 같은 수상쩍은 느낌이 오면 마치 자동차에 시동이 걸리듯 자동으로 발작이 시작되어 스스로 멈추기가 쉽지 않다.


이러한 현상이 발생하는 이유는 앞서 언급한 것처럼 신경계의 혼란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정신의학적 측면에서 볼 때, ‘심리적 현상이 신체적 증상 및 신체적 변화까지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정신신체(Psycho-Somatic) 질환의 원리가 적용되는 것이다. 심리적 스트레스가 기관지 안에서 점액 과다 분비와 기관지 경련을 일으켜 호흡을 곤란하게 만드는 천식 증상이나, 심리적 스트레스로 인한 위산 과다로 위궤양이 발생하는 것도 정신신체 질환의 일종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공황발작이 오는 이유는 뭘까? 이는 자신이 감당하지 못할 무의식적 스트레스나 상황을 피하고자 하는 정신 상태에 대한 신체의 반응인데, 쉽게 말하자면 먼지 바람이 불 때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눈꺼풀을 깜박이는 반응과 비슷하며, 막연한 심리적 불안감을 보다 구체적인 신체적 증상으로 표현하는 대체(displacement) 및 합리화 과정이다.


자율신경의 자연스러운 반응이며 불쾌한 상황을 회피하고자 하는 노력이지만 문제는 마치 꽃가루 알레르기처럼 그 반응 자체가 너무 과하게 과장되어 발생하므로 오히려 불필요하게 과도한 불쾌감과 괴로움을 줄 수 있어 병으로 분류되고 치료가 필요한 것이다.


극도의 공포와 통증은 우리를 쇼크로 죽게 할 수도 있다. 최후의 전법인 삼심육계 줄행랑도 통하지 않을 경우, 최고의 대처법은 죽건 살건 다 포기하고 기절해 버리는 것이 될지도 모른다. 일종의 단전, 즉 전기선의 급작스러운 단절 상태로 인한 정전을 의미한다. 혼절, 즉 정신줄을 놓는 것이다.


공황장애(panic disorder)는 여러 번의 공황발작이 일어나는 불안장애이다. 비교적 흔한 질환으로 평생 유병률이 2.5% 정도라고 하는데, 실제로는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공포와 당황이 합쳐진 공황(恐慌)을 뜻하는 패닉(Panic)이라는 단어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판(Pan)이라는 신(神)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는데, 반인반수(半人半獸)로 위는 인간이고 아래는 염소라서 통상 악마적 상징으로 활용되어 왔다.


판이 나타나면, 사람들은 겁을 먹고 혼비백산하여 달아났다고 하므로, 이게 바로 ‘패닉상태’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겠다. 하지만 소문과는 달리 판은 목가적이며 목축을 하는 목자의 상징이자 야생성을 의미한다.


인간의 신경계에서 공황장애의 원인이 되는 주된 부위는 포유류의 뇌 중에서도 비교적 원시적 수준의 뇌에 해당하는 변연계(limbic system)이며 이곳은 공포, 분노, 공격 및 도피 등의 기초적 감정 및 행동을 담당한다.


여러 가지 신경전달물질들이 관여할 것으로 보고 아직 연구 중이지만, 과학적으로 증명된 것 중 하나는 ‘혈액 중의 이산화탄소 과잉상태’이다. 인위적으로 혈액 중에 액화된 이산화탄소를 직접 주입하면 극도의 공포가 유발된다. 하지만 자연 상태에서의 이산화탄소 과잉현상의 발생기전은 조금 다르다.

 

공포상황에서 숨을 죽이는 바람에 산소가 부족해진 상태라기보다는, 심각한 과호흡이 호흡의 불균형을 초래하여 이산화탄소 과잉상태를 부른 것이다. 제대로 된 호흡이 아닌 얕고 잔 호흡만 계속하다 보면, 폐 속으로 산소가 충분히 유입되지 못하고 이산화탄소는 배출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해 이산화탄소가 축적되고, 이는 혈류를 타고 뇌로 전달되어 극심한 불안 공포를 야기한다.


그러므로 자신의 호흡을 안정되게 가다듬는 훈련이 필요하며, 이것이 힘들다면 코와 입에 종이봉투 혹은 종이컵을 대고 천천히 호흡하는 방법이 응급치료법으로 사용되고 있다. 단, 공기가 통하지 않는 플라스틱 컵이나 비닐봉지는 절대 사용해서는 안 된다.


평소에 명상이나 요가 등으로 자기조절 능력을 키워두는 것이 좋으며, 허브 중에서는 라벤더 향이 효과적이다. 그러나 최근에 밝혀진 바로는 식물에서 추출하는 향수나 방향유에 사용되는 정유(essential oil) 중에 발암 성분이 함유된 것들이 있다고 하니, 제품 선택에 유의해야 한다.


이와 같은 자연 혹은 자가 요법이 통하지 않을 경우 약물치료를 받을 수 있는데, 며칠 내로 빠른 효과를 볼 수 있다. 항불안제인 신경안정제와 항우울제를 함께 복용하다가 신경안정제를 줄이면서 끊고, 이후 항우울제만 유지하다가 이것도 서서히 끊는다. 약물치료와 함께 간단한 상담을 받는 것도 좋다.


약물치료의 정당성은 기억력 및 반복된 학습과 연관된다. ‘자라한테 물린 사람, 솥뚜껑 보고도 놀란다’고 한다. 공포스러운 학습효과가 반복되는 것을 차단해 재발 횟수를 줄이고 간격을 늘이다 보면, 몸은 스스로 차단 능력을 키우게 된다.


또한 순수한 정신과적 문제가 아닌 내과적 문제가 원인일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과거에는 주로 역류성 심장판막 질환과의 감별진단을 강조했으나, 최근에는 심장의 관상동맥 질환과 연결 짓는다. 갑상선기능항진증도 감별해야 한다. 순수한 정신, 심리적 문제인지를 감별하기 위해 특히 중장년층들의 경우 갑자기 발생한 공황 증상에 대해서는 정신과 전문의와 상담한 후 내과적 진단을 함께 받아보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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