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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전철 1호선을 타고가다 보면 동묘역이 있고, 바로 옆에 동묘가 있는데, 이곳은 삼국지에 등장하는 관운장을 모신 사당이다.
중국에서는 역사적인 성인(聖人) 두 분을 꼽으라하면 한 분은 문성(文聖) 공자(孔子)요, 또 다른 한분은 무성(武聖) 관운장(關雲長)이라고 하는데, 그들의 무덤 또한 성인의 무덤으로 공림(孔林)과 관림(關林)으로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중국인들에게 관우는 절대적이고, 거의 신앙적인 존재로 인식되고 있으며, 그래서 우리나라 서울에까지 ’동관왕묘’가 있는 것이다.
관우(關羽)는 강한 자에게는 강하고 약한 자에게는 매우 약한 의리(義理)의 사나이요, 조조(曹操)는 최고의 권력자였지만 전장에서 궁지에 몰리게 되어서는 적국의 장수인 관우에게 목숨을 애걸하는 비겁한 모습을 보여주기도 한다.
나관중의 삼국지를 읽다보면 넓은 대륙에서 펼쳐지는 웅대한 배경과 천하를 훔치려는 야심(野心)찬 남자들의 야욕(野慾)으로 한 왕조가 쓰러져가는 안타까움도 엇볼 수 있고, 그들을 중심으로 많은 영웅호걸들의 활약상은 책을 들면 쉽게 덮을 수 없는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 중에도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적벽대전(赤壁大戰)이라고 생각되는데, 10만 개의 화살을 얻는 방법이 매우 흥미롭기도 하고, 또 동남풍을 빌어서 험난한 사지(死地)를 멋있게 벗어나는 공명의 지혜를 들 수 있으며, 조조의 거대했던 60만 대군은 방통의 연환계와 공명의 동남풍에 힘입어 주유가 지휘한 화공작전(火攻作戰)에 완전히 궤멸되다 시피 하고, 불과 2~3천의 군졸들 호위를 받으며 적벽을 빠져 나오는 장면, 그리고 조조의 마지막 숨통을 놓아주면서 목숨보다 더 소중히 여기는 관운장의 의리(義理)를 여실히 보여주는 화용도 계곡에서 용서하는 장면은 삼국지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두고두고 머릿속에 여운이 남게 되는 것이다.
또 제갈량(諸葛亮)은 적벽(赤壁)에서 완패한 조조군의 도주로를 정확하게 예측하고 있어서 오림(烏林)에는 조운(趙雲)을 매복하게 하였고, 오림에서 빠져나오면 다음 길목인 호로곡(胡蘆谷)에는 장비(張飛)를 배치하였으나, 관우(關羽)에게만은 아무 임무도 주지 않으면서 관우를 답답하게 만들고, 결국에는 관우가 답답해져서 "왜 자신은 보내지 않느냐"고 묻자, 제갈량은 "가장 중요한 관문인 화용도가 남았는데 관우님은 조조의 은혜를 입었으니 조조를 놓아 보낼 것이라 보내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그러자 관우는 자신은 이미 안량과 문추를 베어서 은혜를 갚았으니 그럴 리 없다면서 "내가 조조를 풀어주면 나의 목을 내놓을 것이며, 조조가 화용도로 오지 않으면 제갈량이 목을 내 놓으시오."하는 내용으로 쌍방이 목숨을 담보로 한 군령장(軍令狀)을 쓰고 관우는 출전한다.
하지만 관우가 출전하자 도원결의를 한 형제지만 못마땅하게 생각한 유비가 "관우는 의리를 지키는 사람이라 아무래도 조조를 살려줄 것 같다."고 걱정을 하지만, 제갈량은 천문을 보니 어차피 조조는 아직 죽을 운명이 아니므로, 관우를 보내서 풀어주게 하면, 예전에 졌던 빚을 갚는 것이 되기 때문이라고 공명다운 예견과 지혜를 발휘한다.
한편 적벽대전에서 공명(孔明)과 주유(周瑜)의 동맹군에게 60만 대군을 거의 잃고 허도로 달아나는 조조는 2~3천 군졸들의 호위를 받으며 적벽을 빠져 나와, 화용도 계곡으로 드려서자 입구인 오림에서 기다리고 있던 조운에게 습격을 당해 겨우 목숨만 부지한 채로 달아난다.
달아나다가 잠시 숨을 돌리려는 찰나, 다시 호로곡에서 장비를 만나 곤욕을 치르다 보니 불과 30여 명 군졸의 호위를 받으며 마지막으로 험난한 지역인 화용도(華容道)로 향하는 두 갈래 갈림길에서 앞길을 살펴보니, 큰 길에서는 연기가 나지 않는데, 작은 길에서는 모닥불을 피운 듯이 연기가 오르고 있었다.
이에 조조는 잠시 생각하다가 작은 길을 택했는데, 병사들이 그 이유를 묻자 "이것은 제갈량의 함정이다. 작은 길에 불을 피워서 큰 길로 유도하여 우리를 기습하려는 계책이다.
그러니 작은 길로 가자."라고 대답하여 좌우 사람들을 감탄케 했으나, 그 길은 너무 험한 진흙구덩이 여서 쓰러지는 사람들을 밟고 넘어갈 정도 인지라 중간에 쉬면서는 이런 말을 했다.
"주유와 제갈량은 정말 꾀가 없나봐! 나 같으면 이 길에다 군대를 매복시켜서 우리를 기다릴 텐데 말이야, 그랬으면 우리 모두는 꼼짝 못하고 죽을 수밖에 없지 않겠는가." 하면서 비웃는 어조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관우와 500여명의 군사들이 조조를 포위해 버렸다.
이에 깜짝 놀란 조조는 승상의 지위와 체면도 잊어버리고 허겁지겁 말에서 내려 적장(敵將)인 관운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살려줄 것을 애원한다.
[대한행정신문] 용서(容恕)하는 마음 : 네이버 블로그 (naver.com)
결국 관운장은 넓은 아량과 측은한 생각마저 들어서 조조에게 도망갈 틈을 열어주게 되고, 나머지 병사들까지 살려주게 된다.
그렇게 되자 결국 관운장은 군령장대로 목을 내놓아야 하게 되는데, 유비는 도원결의를 내세우고, 모든 장수들도 간곡하게 용서해 줄 것을 건의하는지라, 형벌은 취소되었으나, 관우는 공명에게 큰 빚을 지게 되었다.전쟁터에서 용맹을 떨치던 장수 관운장이지만, 인간적으로는 약한 사람 앞에서 무한히 약해지는 한 인간으로서의 덕장(德將) 모습을 보여주는 대목임에 틀림이 없다.
권모술수와 거짓으로 양심을 버리는 사람들, 강한사람 앞에서는 한없이 약한 행동을 하고, 약한 사람에게는 한없이 강한 행동을 하려는 사람들의 모순적인 행동을 볼 때, 관우의 인간적이고 덕장으로서의 행동을 생각하면 숨이 막힐 정도로 숙연해진다. 이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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